Marketer Josh

블루록: 세계 최고의 에고이스트는 마지막에 무엇을 내려놓는가

· 7분 읽기

팀플레이가 아니라 '나'를 말하는 스포츠 만화

일본의 소년 스포츠 만화는 대체로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동료를 믿어라, 팀이 하나가 될 때 기적이 일어난다. 우정과 노력과 승리의 공식이죠.

《블루록》은 이 공식을 정면으로 뒤집습니다. 이 작품에서 축구는 팀플레이가 아니에요. 가장 중요한 건 개인의 사고, 개인의 욕망, 그리고 에고입니다. "세계 최고의 에고이스트만이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될 수 있다." 작품 전체가 이 명제 하나를 축으로 굴러갑니다.

처음 이 설정을 접하면 불편할 수 있어요. 지나친 자아를 이렇게 대놓고 긍정해도 되나 싶거든요. 흥미로운 건 이런 의심이 작품 밖 독자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작품 안에서도 이 명제는 끊임없이 의심받아요. 작품 초반, 모두가 멘탈이 무너져 있을 때 치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방금 예로 든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있는 나라들도 월드컵 우승은 못 했다고요. 에고를 외치는 작품이 그 에고의 한계를 스스로 캐릭터의 입으로 말하게 한 셈입니다.

의심과 좌절과 성장의 연쇄

그런데도 이야기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의심받던 에고 덕분에 누군가는 실제로 성장하고, 그 성장이 다시 새로운 의문을 낳습니다.

에고를 키운다 → 의심받는다 → 좌절한다 → 에고를 더 정교하게 다듬어 성장한다 → 다시 의심받는다

저는 이 연쇄가 블루록의 흡입력을 만드는 엔진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은 정답을 주지 않고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독자를 끌고 가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궁금해집니다. 이 질문은 마지막에 어떤 답에 도착할까요?

제 가설: 에고를 쌓아 올린 사람이 그것을 내려놓는 순간

제 예측은 이렇습니다.

결말에서 가장 큰 성과를 내는 사람은, 세계 최고 수준까지 쌓아 올린 에고를 스스로 잠시 내려놓는 사람일 것이다.

에고를 부정하는 결말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에고를 끝까지 키우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해요. 그래야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열망을 끝까지 붙들 수 있으니까요. 다만 그렇게 쌓아 올린 자아를 결정적인 순간에 세상과 정렬시킬 때, 역설적으로 가장 높은 곳에 닿는다는 것입니다.

근거 1. 블루록이라는 프로젝트 자체가 역설이다

블루록의 목표는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스트라이커가 왜 필요할까요? 일본의 월드컵 우승을 위해서입니다. 월드컵 우승은 개인이 아니라 팀이 얻는 성과예요.

결국 이 작품의 전제에는 처음부터 "극한의 개인을 만들어 공동의 목표를 이룬다"는 긴장이 숨어 있습니다. 치기리의 말처럼 작품 안에서 에고의 명제가 계속 의심받아 온 것도 이 긴장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결말은 이 긴장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근거 2. 플로우, 자아가 사라지는 몰입

블루록에서 선수들이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때는 '플로우' 상태로 그려집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몰입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가 자의식의 소멸이에요. 나를 의식하지 않을 때 가장 나다운 플레이가 나오는 것이죠.

에고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끝에 "나"라는 의식이 사라지는 지점이 있다는 것. 작가는 이미 이 역설의 복선을 깔아 두었다고 생각합니다.

근거 3. 이사기의 출발점이었던 그 '패스'

주인공 이사기 요이치가 블루록에 오게 된 계기는 고교 시절 결정적인 순간에 직접 슈팅하지 않고 패스를 선택했다가 패배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에 이사기가 다시 패스를 선택한다면 어떨까요?

두 패스는 겉모습만 같고 발상은 완전히 다릅니다.

  • 고교 시절의 패스: "축구는 팀플레이니까." 책임을 피하고 에고가 없어서 한 패스
  • 결말의 패스: "이 게임은 내가 설계했다." 판 전체의 어드밴티지 총량을 키우기 위해, 세계 최고의 에고를 가진 사람이 스스로 고른 패스

같은 행동이 전혀 다른 이유로 반복되는 수미상관이죠. 이사기의 무기가 처음부터 다른 선수들의 에고를 읽고, 먹어 치우고, 퍼즐처럼 맞추는 '연결형 에고'였다는 점도 이 가능성을 뒷받침합니다.

물론 정반대의 결말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마지막 순간 망설임 없이 그냥 때려 버리는 것이죠. 슈팅 직후 결과를 바로 보여주지 않고 한 박자 늦게 공개하는 연출도 상상해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어떤 형태든 그 장면이 말하려는 핵심은 같을 거라고 봅니다. 자신과 세계를 정렬시킨 사람이 가장 큰 성과를 낸다는 것.

근거 4. 이사기는 천재가 아니라 수재다

블루록은 한 화를 통째로 할애해 천재와 수재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에고 진파치의 이야기와 이사기의 생각을 따라가며 풀어내는 대목이에요. 천재는 세상에 없던 개념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고, 수재는 그 개념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세상에 증명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둘은 함께 갑니다. 이 대목에서 예로 등장하는 인물이 스티브 잡스예요.

주인공 이사기는 전형적인 수재 캐릭터입니다. 혼자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는 타입이 아니라, 필드 위의 재능들을 읽고 연결해서 결과로 증명하는 타입이죠.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수재의 역할은 정의상 세상을 향해 있어요. 증명이란 결국 세상과 맞닿는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수재인 이사기가 도달할 최종 형태도 자아를 세상과 정렬시키는 모습일 가능성이 큽니다. 저는 이 대목을 보고 제 예측이 맞을 거라는 확신이 더 커졌습니다.

현실에서도 그랬다: 스티브 잡스, 그리고 저의 이야기

앞서 이야기한 스티브 잡스는 의심할 여지 없는 에고이스트였습니다. 초기의 잡스는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그가 가장 큰 성과를 낸 시기는 그 거대한 자아를 세상의 필요에 정렬시킨 이후였다고 저는 봅니다. 자아를 버린 게 아니라, 자아가 향하는 방향을 세상과 일치시킨 거예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B2B 마케터로 일하며 고객의 니즈를 만들고, 그것을 리드로, 다시 상담으로 연결하는 일을 했어요. 그런데 꽤 오랫동안 팀을 온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리드를 만드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영업까지 내가 직접 해서 성과를 내야 한다, 모든 걸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돌아보면 전체적으로 일이 가장 잘 풀렸던 시기는 따로 있었습니다. 제가 니즈를 만들고, 마지막 단계는 어느 정도 동료에게 양보했을 때였어요. 그때 팀의 시너지가 가장 크게 났습니다.

솔직히 그 시기에 제가 가장 인정받았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공을 넘긴 사람보다 골을 넣은 사람이 더 주목받는 건 축구나 회사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래도 전체 파이를 키운다는 관점에서는 그 방식이 맞았다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 양보는 제가 니즈를 설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선택이었어요.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넘긴 공이 아니었던 거죠.

블루록을 보면서 그 시기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예상되는 반론: "그건 에고의 포기 아닌가?"

이런 반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블루록의 정체성은 에고인데, 마지막에 그걸 내려놓으면 작품이 스스로 메시지를 부정하는 것 아니냐고요.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에고가 없는 사람은 내려놓을 것도 없습니다. 끝까지 키운 사람만이 '선택해서' 내려놓을 수 있어요. 그래서 그 내려놓음은 패배가 아니라 에고가 행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형태의 결정입니다. 에고의 부정이 아니라 에고의 최종 진화형인 셈이죠.

마치며: 이 만화가 자기계발서처럼 읽히는 이유

블루록은 계속 묻습니다.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고, 그걸 위해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느냐고요. 그 질문 덕분에 저는 제 일에서 더 욕심을 냈고, 실제로 성과도 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마지막에 남길 질문은 하나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키운 너의 에고를, 너는 어디에 정렬시킬 것인가?"

세계 최고의 에고이스트가 그 에고를 세계와 맞추는 순간. 저는 블루록의 마지막 페이지가 바로 그 장면이기를 기대합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